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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 의결되는 바람에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긴 했지만, 사실 지난해 2월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의 시행령이 처리된 것일 뿐이다. 게다가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개정 경범죄처벌법에서 개악된 부분은 별로 없다.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행위에 대해 범칙금도 부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처벌이 완화된 것”이라는 경찰청의 해명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우선 이전에는 즉심에 회부하여 재판을 받아야 했던 행위에 범칙금 통고가 가능해지면 경찰이 부담 없이 단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모호한 경범죄 조문들을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범칙금을 남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범칙금 통고에 이의가 있으면 즉심을 받으면 되지만, 즉심에서 벌금형을 받으면 전과자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현실적으로는 범칙금 통고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경찰의 범칙금 통고가 법원의 재판 없이 사실상 최종결정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범죄처벌법이 민주화 이후 꾸준히 개선되어 오긴 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재주 등을 부리고”, “억지로”, “떠들썩하게”, “몹시 거칠게”, “험악한 문신”, “마음을 홀리게”,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못된 장난” 등 형사 구성 요건이라고 믿기 어려운 조항들이 여전히 가득하다. 단순 질서위반 행위에 경찰력을 동원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자식 돌보듯이 국가가 국민의 일상적 삶의 영역에 관여하겠다는 후견주의적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경찰력은 다른 해결책이 마땅치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쓰여야 하는데, 경범죄처벌법은 사회적 위험이 거의 없는 단순 질서위반 행위에까지 조기에 경찰력을 투입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경찰은 합리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지만, 이것은 경찰을 신뢰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공권력은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통제가 필요하며, 그 통제의 방법으로 ‘인간’이 아닌 ‘법’을 믿겠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원리다. 그런데 범칙금 통고처분 건수는 2007년에 7만7000여건에서, 2008년 27만2000여건으로 급증했다가, 작년에는 다시 2만7000여건으로 급감했다. 공권력의 의지에 따라 법적용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경범죄처벌법이 어떻게 운용될지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경범죄처벌법에서는 ‘법의 품격’을 위한 최우선적 가치인 ‘예측 가능성’이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경범죄처벌법은 개정이 아닌 그 존폐를 다퉈야 할 대상이다. 법 자체를 폐지하고 단순 질서위반 행위(예: 쓰레기투기 등)는 행정제재로, 기존의 형법과 중복되거나(예: 업무방해 등), 법적 제재가 불필요한 행위(예: 문신노출 등)는 아예 폐지하고, 여전히 형사처벌이 필요한 행위(예: 스토킹행위)는 별도의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일탈행위가 있으면 범죄화하여 경찰력을 동원하는 손쉬운 해결방법에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비도덕적이거나 반사회적인 행위라 해도, 그것을 자율적 해결에 맡길지, 행정제재로 다룰지, 아니면 국가형벌권을 발동할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질’은 공권력이 얼마나 적정한 방식으로 집행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 영역에 국가가 너무 깊숙이, 그것도 가장 강력한 수단을 통해 관여하겠다는 생각부터 재고해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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