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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권사에 기록될 한 사건에 주목한다
기사입력 2016.06.27 21:25
최종수정 2016.06.27 23:24
지금 대한민국 인권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통일부는 총선을 코앞에 둔 지난 4월8일 중국 저장성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했다. 그간 탈북자들의 신변보호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탈북자들의 신원을 비공개해왔던 정부의 태도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측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여종업원들의 북쪽 가족은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에게 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와 딸들을 만나겠다고까지 했다. 게다가 지난 5월 초에는 이들 중 한 명이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며 단식하다가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문마저 돌았다.

이들은 현재 80일 이상 외부와의 접촉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이 어렵게 북측 가족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법원에 구제신청을 했다. 이들을 법정으로 불러 그 진상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 말대로 이들이 자진 탈북했고, 지금 국정원에 있는 것도 신변안전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라면, 의혹은 사그라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제기된 의혹처럼 그들 중 일부라도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한국에 들어와 국정원에 억류되었다면, 그것은 명백히 인권침해다. 이것을 판명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신보호법이 정한 대로 국정원이 이들을 법정에 내보내 변호인을 만나도록 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법관의 심문에 응하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지난 6월21일 진행된 심문기일에 국정원은 이들과 북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이유로 법정에 내보내지 않았다. 일부 보수단체는 이 절차를 신청한 민변을 종북단체라고 비난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인권법 전문가인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런 일들을 납득할 수 없다.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탈북자를 민변이 일부러 들춰내 이런 신청을 했다면 몰라도 이 사건은 그게 아니다. 이들은 입국할 때 정부 당국에 의해 이미 언론에 공개되었고 사진까지 찍혔다. 북한의 가족이 위험에 놓였다면 그것은 정부에 의해 초래된 것이지 민변의 책임은 아니다.

정부의 탈북 사실 공개는 자진탈북을 전제한 것이니, 법정에서 그게 밝혀진들 새로운 것도 아니다. 더욱 공개 법정도 아니고 비공개 법정에서 심문하겠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의혹을 키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혹스러운 것은 법원의 자세다. 심문기일 법원은 당사자들을 법정에 불러 불법구금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법원은 의당 재소환을 명하고, 국정원이 그것에 불응하면 인신보호법 위반이라는 것을 경고했어야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법원은 변호인들의 속행 및 재소환 요청마저 무시한 채 심문절차를 종결하려 했고, 이에 반발한 변호인들로부터 기피신청을 받고 말았다.

언필칭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부끄럽다. 어떤 형태든 불법구금의 의혹이 있으면 법원은 당사자를 불러 그 적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게 우리 헌법과 관련 법률이 요구하는 적법절차다. 인신보호법은 바로 이를 위해 만들어진 문명국가의 자존심이다.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을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 부를 수 없다. 어떤 국가기관이라도 법원이 구금되어 있는 사람을 법정으로 데려오라고 하면 따라야 한다.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법원은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이, 당사자의 석방을 명해야 한다. 법원이 이런 당연한 사명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인신보호법이란, 17세기 영국이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인류사에 선물한, 인신보호 절차에서 유래한 법이다. 인신보호의 라틴어 HABEAS CORPUS는, 법관이 인신구금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구금된) 인신을 법관 앞에 내놓으라’는 뜻이다.

그러니 법원은 국정원에 대해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그 당사자들을 모두 법정으로 데리고 오시오, 그들이 지금 불법구금하에 있는지 아닌지를 우리 법원이 판단하겠소.” 이것이야말로 인권의 보루인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해 우리 시민이 거는 최소한의 기대이다.

<박찬운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